쿰란 동굴내부, 사해사본과 보관 항아리 (출처 구글 이미지 )
쿰란은 사해를 지나는 해안도로 옆에 위치하는데 BC 13C 경에 유다지파에게 분배된 성읍 중에 염성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BC 2C 경에 에세네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이 곳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는데 유대 3대 종파의 하나인 이들은 자신만이 선민임을 믿고 종말론적 신앙으로 절저히 공동체 생활을 했다고 한다. 또 매우 금욕적이었고 율법에 엄격했다고 하며 , 성경을 날마다 기록하면서 기도와 금욕생활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굴된 유적에서 금욕주의자이었기에 서로의 신뢰를 쌓기위해 공동생활을 위한 각종 시설물들과 목욕탕, 성경 필사방, 공동 식당과 마굿간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특히 필사방에서 발견된 사본들은 모두 잉크로 서기관들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한다. BC 31년 대지진으로 멸망되었다 다시 재건되었는데 유대인 대반란 기간인 AD 68년 로마 수비대에 의해 멸망 당했다. 이 때 사본들을 로마의 수비대를 피해 이 곳 동굴에 감춘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1947년 양치는 베두인 목동에 의해 최초 발견되었는데 항아리 속에서 에스더기를 제외한 구약성경 전체 사본 등 700여점이 발견이 되었고 2000년전에 쓰여진 성경임이 밝혀졌다. 이후 발굴을 계속하여 쿰란 주변 11개 동굴에서 약 800개의 두루마리와 책의 일부와 조각들을 발굴해 냈다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사해 사본과 AD 10C에 쓰여진 마소라 사본과의 비교에서 차이가 없음이 인정되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류에게 주신 계명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참고:성서의 땅 유재호 FEBC )
[출처] 쿰란과 사해사본 | 작성자 ta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