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구글 이미지)
페트라는 나바티안 왕국의 수도로 알려져 있는데 반석 또는 바위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전의 이름은 "셀라"로 왕하 14:7에 처음 등장한다. 사해 동남쪽 80km지점의 절벽으로 쌓여있는 작은 분지이다. 협곡 입구로부터 약간의 경사길을 따라 약 2Km 걸어 내려가면 유명한 알카즈네 신전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곳 외에도 페트라 전역에 아직도 발굴 안된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 지역을 둘러싼 바위산들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붉은색이 빛을 받아 아름다운 형태를 보여준다. 절벽들은 나바티아인들이 절벽 위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면서 자연석을 파서 만든 묘지와 장식물로 뒤덮혀 있어 이 곳은 주거지보다는 묘지와 신전의 역활을 한 곳으로 보고 있다.
나바티안 왕국은 BC 4C부터 존재했으며 BC 78년에 통일 왕국을 이루어 중동지역의 무역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는데 로마에서 시리아까지 세력을 넓혔고 주교역품은 유황과 몰약 향신료였다고 한다. AD 105년 로마령으로 합병되었으며 AD 363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후 쇠락의 길을 걷다 7세기에 폐허가 되어버린 후 베드윈족이 살았다.
페트라 초입에 있는 밥 알 시크는 시크 즉 계곡으로 인도하는 관문이라는 뜻인데 마리쿠스2세( AD 40-70)의 가족묘로 상단에 다섯개의 돌조각이 다섯개의 시신이 묻혀있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댐은 와디내 갑작스런 홍수가 발생시 물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건설되었고. 알 카즈네는 40m 높이의 코린트 양식 문양과 조각들로 정교히 장식되어 있는데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하지만 정확한 용도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파사드 거리는 남쪽 절벽에 나바티안인들의 무덤과 조각용 연장을 보관한 곳이였다고 한다. 원형 경기장은 희생제단 아래 능선에 암석을 깍아 만든 원형극장으로 약 4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고 무대쪽은 로마인에 의해 재건축것 이다. 페트라는 일만년간의 인류 정착의 흔적과 지질학적 유산이 복합되어 있는 나바타인의 도시로 남아 있다.
성경적으로는 갈라디아서 1:7에서 사도 바울이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페트라를 아라비아로 인정하고 있어 이 곳이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이 시작된 곳으로 보고 있다.
[출처] 나바티안 왕국의 수도 페트라 | 작성자 taca